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가온 와인 페어링

국내에서 유이한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중 한 곳인 “가온” 에 다녀왔습니다. 맛도 궁금하지만, 이곳에서 제공하는 와인 리스트나 음식과 와인의 페어링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아직까지 파인 다이닝은 대중화되지 않았지만, 파인 다이닝과 음식과 와인 페어링을 보는 것은 레스토랑의 수준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온은 신사동 인근에 위치해 있는데, 입구는 건물 안쪽이라서 접근성이 좀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예약하고 안내받은 식탁까지도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통로를 거쳐가야 해서 솔직히 편안한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우선 조금 아쉬웠던 것은, 와인 메뉴는 스파클링, 레드, 화이트 각 한 종씩만 제공되는 것이었습니다. 가온의 음식/와인 페어링은 와인이 아니라 한국 전통주를 중심으로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한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은 한국술이니, 합리적인 선택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식의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국내 최정상급 한식 레스토랑에서 한식과 와인의 페어링은 어떻게 접근하는지 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와인 메뉴들은 다분히 구색맞추기 정도로만 준비되어 있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사실은 이날 몸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고 감기 기운도 있었기에 파인 다이닝을 즐기기에는 무척 좋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감기 기운때문에 미각도 둔해져 있었고 속도 불편해서 음식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와인을 맛보고 싶어서, 무난하게 샴페인을 주문했습니다. 특이하게도 가온 메뉴에 준비된 샴페인은 마이너 산지라고 할수 있는 영국 샴페인, 구스본 블랑 드 블랑(Gusbourne Blanc de Blancs) 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샤르도네 100% 로 만들어진, 병내 2차 숙성이라는 전통방식으로 양조된 샴페인으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만찬주로 사용되면서 널리 알려진 와인입니다. 비싸지 않으면서도 품질이 상당히 좋은 샴페인을 골라 놓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와인을 시키니 소믈리에가 와서 직접 서빙을 해 주는 것을 보니 소믈리에가 준비되어 있는 레스토랑이라는 점도 마음에 드는 부분입니다.

가온의 점심 메뉴는 다른 선택이 없이 정해진 코스 요리가 나옵니다. 다만 떡갈비 구이 (+39천원) 를 추가할지 여부만 결정하면 됩니다.

전채로는 미나리즙 / 관자숙회 / 양파부각 / 메밀전병 / 감자수제비가 나옵니다. 한숟갈에 먹을 정도로 작은 양이 조금씩 나오는데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어보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첫번째 메인 요리로 나오는 생복찜입니다. 다시마로 감싸 부드럽게 쪄낸 전복에 버섯양지 육수를 곁들였습니다. 무척 부드러운 맛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된장양념에 재운 항정살을 숯불에 구운 맥적구이입니다. 고추냉이 나물을 얹어서 내 놨고, 고추냉이 꽃도 같이 내놓는 섬세함이 돋보입니다. 맥적 옆에는 돼지감자죽이 살짝 서빙이 되었습니다. 돼지감자죽에는 와사비가 들어갔는지 살짝 매콤한 맛이 은근하게 납니다. 맥적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기 위한 장치로 생각됩니다.

김치 볶음밥도 같이 서빙이 되었는데, 김치볶음밥은 동네 김치볶음밥과 별반 차이가 없는 맛이라서 다소 실망했습니다. 어차피 김치볶음밥으로 더 뛰어난 맛을 내는 것이 어려웠다면 다른 메뉴를 준비하는 것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누룩소금에 재워 부드럽게 쪄낸 옥돔에 구운 옥돔뼈로 맛을 낸 간장을 곁들인 옥돔찜입니다. 매우 부드럽게 익혀진 것이 쉐프의 뛰어난 조리기술을 보여줍니다.

메인 요리라 할 수 있는 떡갈비구이와 쌈추겉절이 입니다. 떡갈비구이는 대추고양념에 재운 갈비살을 부드럽게 쪄낸 전복과 함께 구운 구이이고, 호화롭게 송로버섯을 같이 올렸습니다. 사진에는 짤려서 안나오지만 쌈추 겉절이는 쌈추, 밤, 배를 고춧가루와 멸치액젓으로 버무린 생채입니다. 맛이 짜거나 자극적이지 않아서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입맛도 배려한 대중적인 맛을 추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식사는 곤드레 솥밥과 아욱토장국입니다. 솥에서 직접 밥을 지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솥을 가져와서 뚜껑을 열고 밥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도 있었습니다. 차라리 솥에서 손님이 원하는 만큼 직접 밥을 퍼서 먹도록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솥밥은 매일 도정한 살과 곤드레를 넣고 지었고, 아욱 토장국은 멸치육수에 아욱과 토장으로 끓여냈습니다. 어제 술을 많이 마신 상태라서 개인적으로는 토장국이 아주 맛있어서 2 그릇이나 먹었네요.

대구전, 오징어 젓갈 등 반찬들은 모두 정갈하고 맛이 좋았습니다.

식사 후 디저트로는 애초빙과, 검은콩차, 기주떡, 금귤정과, 딸기과편, 도라지정과가 차례대로 나왔습니다. 모양이 너무 예쁘고 맛도 달콤한 딸기과편이 가장 기억에 나고, 아이스크림 떡 같이 차가운 쑥으로 만든 애초빙과도 특색있는 맛이었습니다. 금귤정과는 살짝 알싸한 맛이 납니다.

2시간에 걸쳐서 점심 식사를 마쳤습니다. 식사 가격은 216,000 원이었습니다. 스파클링 와인 (35천원), 스파클링 워터  산 펠리그리노(12천원), 떡갈비 (39천원) 이 추가된 가격이었고, 점심 기본 코스 가격은 130,000 원 입니다.

솔직히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라는 기대가 너무 높았던 탓인지, 아니면 제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맛을 제대로 못느껴서인지는 몰라도 3스타 레벨 치고는 약간 아쉬운 경험이었습니다. 맛과 정성은 좋았지만 다른 1~2 스타 레스토랑과 비교해서 압도적으로 뛰어나다는 느낌은 없었고요. 식당 분위기도 그리 편안한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가온이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아마도 식사마다 직접 만든 도자기와 페어링한다는 점, 그리고 한식을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린 부분이 고평가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 부분은 훌륭한 경험이었다고 인정하네요. 특히 식사 메뉴에 맞게 도자기 그릇들을 하나하나 맞춰서 페어링하여 시각적인 즐거움을 극대화 한 것은 정말 대단합니다. 어떤 한식당에서도 음식과 그릇까지 맞춰서 페어링한다는 건 본 적이 없네요. 일본의 미식가였던 로산진이 떠오릅니다.

다만 예전에 스페인에서 가봤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ABaC Barcelona) 의 대단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전체적인 맛이나 분위기 면에서 좀 아쉬운 느낌이 있습니다. 이 날은 제가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큰 감흥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향후에 제 몸 컨디션이 좋을 때 다시 한번 가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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